동아시아 민중연대의 오래된 미래, 이 부부를 보라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수신료의 가치’는 해야 할 일 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2월 7일 밤,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가 90분 동안 방영되었다. 2024년 새해 벽두에 별도의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진행하지 않은 대통령의 공개 인터뷰 특집이라 그 의의가 절대 가볍지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방영 전부터 기대보다는 논란만 가득했다. 녹화로 진행한다고 공표했기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논란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서 급격하게 친정부여당 성향으로 수뇌부가 교체된 KBS가 제대로 검증에 나설 수 없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더해졌다. 어찌 되었건 방송 분량을 확인해 보고 나서 평가하자고 말을 아끼는 이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방영된 이후엔 허탈해하거나 냉소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KBS 방송에 떡하니 붙게 마련인 ‘수신료의 가치’를 스스로 퇴색시킨 블랙 코미디가 된 셈이다.

그런 와중에 정작 ‘수신료의 가치’를 체감케 하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은 찬밥 신세가 되어간다. 2013년부터 이어져 왔던 장수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며칠 차이로 급작스럽게 장기 휴지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정권 교체 시기마다 급격한 부침을 겪었던 과거 사례를 상기해 본다면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정권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근현대사 특정 주제 요구를 받았다거나, 아예 논쟁을 피하고자 중세 배경 위주로 다뤘다는 구설을 거슬러가 본다면, 여전히 정권의 구미에 맞는 방송을 원하는 외압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다양한 온라인 방송 플랫폼의 전국시대, 이전에 비한다면 확연히 낮아진 ‘공중파’ 방송의 악전고투 와중에 공영방송이 놓지 말아야 할 우선이 무엇인지 따져본다면 ‘공중파의 위기’를 논하지만 정작 과거의 미덕은 잊어먹은 채 오랜 악습만 살아남은 격이다.

대통령 특별대담은 수신료 납부의 가치를 스스로 걷어찬 부끄러운 사건으로 기억될 테지만, 그런 와중에도 정반대로 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방송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이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지 설득하게 하는 기획이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저 냉담하게 돌아서기엔 그런 몇몇 사례가 눈에 밟히고 뇌리에 남기에 ‘공영방송’의 자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는 유효한 셈이다. 2023년 연말, <다큐 인사이트> 2부작으로 방영된 ‘일본사람 오자와’ 편은 그런 공영방송의 소중함과 책무를 충족시킨, 일회성으로 호명되기엔 너무나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한·일 노동자 연대투쟁 현장에는 ‘오자와 부부’가 있다

경기도에 있느 한국와이퍼 사업장은 일본의 대기업 ‘덴소’를 원청으로 하는 하청업체다. 2022년 7월부로 덴소는 한국와이퍼 청산절차를 발표했다. 곧이어 사용자는 실질적인 청산절차에 돌입한다. 그 첫 번째 행보는 공장 내 기계 반출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에 가입된 소속 조합원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맞서 싸우지만, 공권력의 비호 아래 적법 절차를 강조하는 회사의 물리력을 당해내지 못한다. 결국에 이 노동자들은 마지막 명운을 걸고 일본 원정투쟁을 기획한다. 원청업체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국내에서의 싸움은 별다른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외국 원정투쟁이라니 듣기만 해도 까마득하지 않은가. 막막한 가운데 소수의 노동자가 원청 본사를 방문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덴소 자본은 대화를 거부한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점 하나. 아무리 제주도와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가성비’ 따져가며 선택하는데 무리가 별로 없을 만큼 국경의 의미가 과거보다 희미해졌다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이 일본 현지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가며 원정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걸까? 관광도 아니고 집회 신고나 거리 선전전 같은 걸 진행하려면 의사소통이 기본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웬만큼 여력이 있거나 ‘상급조직’의 확고한 지원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저 관광 온 거라면 모를까, 원청 기업은 물론 현지의 경찰이나 공권력에게도 불편한 존재인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 차가운 대접을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가 첩첩산중일 테다.

그런데 이들 곁에는 항상 통역 담당은 물론 연대투쟁에 함께 하는 현지 활동가들이 있다. 말 그대로 국제연대가 이뤄진다. 머릿속에서 구호로 맴도는 게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이뤄지는 풍경이 낯설다. 계속 화면을 응시한다. 한 중년 여성은 한국어로 외치는 구호나 사용자 측에 대한 서한 전달 등 번거로운 과정을 일일이 통역하느라 바쁘다. 한일 노동자 연대투쟁 활동가 ‘오자와 쿠니코’다. 그리고 초로의 남성은 한국 노동자들의 울분을 그대로 이입한 듯 경찰과 대치하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오자와 타카시’ 활동가다. 이들은 부부다.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황혼에 접어든 노구를 이끌고 자기 일처럼 연대투쟁에 열심히 임하던 둘은 집에 돌아와 소박한 밥상을 두고 마주 앉는다. 이들이 평범한 부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파악되긴 했지만, 그저 함께 살아온 정만도, 같은 이념과 세계관을 가진 동료의식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농밀한 어떤 깊이가 절로 느껴지는 풍경이다. 남편은 덴소 본사 정문 앞에서 가로막던 경찰과 실랑이 도중 ‘폭행’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옥고를 치렀고, 아내는 코로나19란 전대미문의 봉쇄 상황 때문에 운신이 제약된 한국 노동자들 몫까지 소화하느라 분주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훈훈하기만 하다. 딱히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도 않는데 이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솟아나는 것일까?

 

부부 활동가를 통해서 본 일본 원정투쟁의 역사

이들이 사는 동네에 봄날이 찾아왔다. 일본의 봄을 알리는 벚꽃 축제가 동네에서 한창이다. 잠시 연대투쟁은 잊고 이들 또한 동네 산책을 즐긴다 해서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일본 특유의 ‘마츠리(축제)’ 풍경이 화면에 가득 펼쳐진다. 그런데 오자와 쿠니코 씨는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마츠리 현장에서 거리 홍보와 선전활동에 열심이다. 그는 근래 일본 보수정권의 우경화 흐름을 상징하는 헌법 개정에 맞서 기존의 평화헌법 수호(호헌)를 이웃들에게 알리느라 여념이 없다. 바쁜 와중에 찰나의 휴식시간, 제작진은 오자와 부부가 벌이는 한국노동자들의 일본원정 연대투쟁 기원을 질문한다.

오자와 쿠니코 씨의 입에선 놀랍게도 1989년이란 숫자가 흘러나온다. 30년도 훨씬 넘었다. 한국사회에서 잊힌 기억이 된 1989년 한국수미다전기 일본원정 투쟁에 연대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수미다전기가 대체 어떤 기업인지 바로 이해할 이가 과연 국내에 얼마나 될까? 당시 사회적으로 상당한 화제가 되었건만 한국사회는 어느새 망각의 늪으로 그 이름을 흘려보낸 지 오래다. 그랬던 한 세대 전 역사가 일본의 나이 든 여성 활동가를 통해 소환, 재현된다.

실은 한국수미다전기의 일본원정투쟁을 담은 기록영화가 존재한다. 2010년 박정숙 감독에 의해 완성 후 공개된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 First Love - 1989, Memory of Sumida>이 바로 그 작업이다. 근래 잘 언급되지 않는 해당 작업에 수록된 기록화면이 <일본사람 오자와> 2부작에서도 적지 않게 등장하기에 오랜만에 소환해 본다. 일본 본사는 저임금 생산기지로 한창 경제개발이 지상과제이던 한국에 현지 하청을 설립하고 쏠쏠한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중국 본토가 개혁개방을 맞이하면서 더 많은 차익을 위해 한국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고자 추진한다. 전형적인 ‘철새기업’의 행태다. 450명의 여성 노동자가 1989년 10월에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당하자 노동자들은 11월, 4명의 대표를 일본으로 보낸다. 이들은 고작 3개월 여행용 비자로 입국해 238일간의 투쟁을 진행하고 이듬해 6월, 위로금과 보상금 7억 5천만 원에 사용자와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당시 수미다전기 투쟁은 국내 미디어에서 크게 보도되기에 이른다.

오자와 쿠니코 씨는 이들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지만, 소통의 한계를 절감하고 아쉬운 나머지 1992년, 한국에 어학연수 차 입국해 2년간 한국어 실력을 연마한다. 그리고 30년 넘게 한국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게 된다. 이후 그는 2003년 한국씨티즌 노조의 일본원정에 다시 결합해 8개월간의 투쟁에 동행해 원만한 정리에 일익을 담당한다. 2006년에는 한국산본의 원정투쟁을 지원해 성과를 이룩한다. 2016년, 한국산연 일본원정 역시 229일 만에 해고 철회ㆍ전원 복직 합의를 이끈다. 하지만 4년 후 한국산연의 원청인 산켄 전기는 코로나 상황에서 당사자의 원정투쟁이 불가능한 틈을 노려 일방적으로 폐업을 결정한다. 모든 조건이 최악으로 치달은 격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당사자를 대리해 투쟁 현장에 출근하던 오자와 타카시 씨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다. 공권력과 재판부 역시 ‘삼권분립’에 입각해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삼위일체’가 되어 탄압에 가세한다. 어딜 가나 노동자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반대편 사용자에겐 친구가 아주 많다. 그렇게 남편이 옥중에 있음에도 오자와 쿠니코 씨는 산켄 전기 주주총회에 참가해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리고 사용자를 규탄하고 있었다. 사회적 연대투쟁에 우연한 계기로 참여할 기회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보상도 없이, 심지어 본인들의 신변에도 위협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도 연대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고령에 부부 모두 건강도 썩 좋지 않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어떤 굳건한 심지가 공유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당한 명분이라도 틈이 생길 텐데, 이들은 어떤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살아왔을까.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고참 활동가 부부의 세계관

어느 순간부터 문득 든 생각하나. 오자와 부부가 그저 선량하고 정의감 혹은 의협심이 투철해 바다 건너 외국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분투해 온 건 아닐 것이란 믿음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하청 노동자들의 원정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하기를 수십 년 넘게 거듭해 왔지만, 그 활약은 평범한 이들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곧이어 근래 과거사 망각에 앞장서며 논란이 일고 있는 일본 군마현의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사수와 1923년 간토(관동)대지진 희생자 추모 활동에서 목격된다. 물론 지금 현재의 일본 우경화 바로미터라 할,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활동도 열심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한국과 어떤 특별한 인연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극우파의 시각으론 어쩌면 이들이 ‘자이니치’, 즉 재일조선인이라 매도하기 딱 좋은 활동 범위다. 하지만 오자와 부부의 출발은 전혀 다른 지점이라는 게 인터뷰 과정에서 밝혀진다.

제작진은 묻는다. 한국과 일본 노동자 투쟁은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지. 오자와 씨는 웃으며 비교한 결과를 해설해나간다. 일본의 노동운동은 일단 세계정세-일본정세-공장 상황(기업정세) 설명으로 시작한단다. 반면에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원정투쟁 온 한국 노동자들은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사용자가 당연히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고 한다. 기본적인 조건이 다르지 않은데 현해탄을 사이로 양국 노동자, 그리고 노동운동의 방향성이 퍽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출발점의 차이가 투쟁 방식의 대비로 나타나고, 오히려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배울 게 많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들 부부는 그저 본인들이 처한 일상의 경험을 넘어서는 세계관을 가진 게 확실해 보인다.

오자와 부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들이 한국 노동자 원정투쟁에 연대를 아끼지 않는 건 거대한 역사적 시야에서 출발했음이 밝혀진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이 패망했지만, 전후 일본 사회는 제국주의 일본이 아시아와 한국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방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전에는 무력으로, 전후에는 재빨리 부흥한 대기업 집단의 ‘철새’ 행각을 통해서 반성 없이 이런 행태는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1960년대 전공투 학생운동의 체험이 이어진다. 대학시절 기성세대의 위선과 침묵을 성토하고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데에서 출발한 이들은 강한 반전주의와 사회변혁을 꿈꿨다. 부부는 사회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함께 해오던 중, 일본 사회운동의 극적인 전환점 중 하나였던 산리즈카 나리타공항 건설 반대 투쟁에서 만났다고 한다.

미래의 남편은 투쟁 중 구속되어 반년 동안 투옥되었고, 미래의 아내는 구속자 구호 담당으로 면회를 다니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둘 다 소위 ‘운동권’이다 보니 양가 부모 모두 결혼에 반대했고 결혼식에도 불참했다고 한다. 이들은 신혼여행도 산리즈카로 다녀올 정도로 생활과 운동이 결합이 된 삶을 이미 시작부터 가져온 셈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부부의 증언과 함께 방송 다큐멘터리 틀에 따라 배경자료와 기록영상이 이해를 돕는다. 오자와 씨는 자신이 속한 세대적 개성에 대해 설명한다. 전공투 세대라 불리는 또래는 또한 전쟁 직후 발생하는 ‘베이비붐’ 세대였고, 전쟁을 부모와 주변에 의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에 반전의식이 강한 세대였다는 통찰을 전한다. 그렇게 노동자 의식과 함께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신념으로 숙지한 세대인 것이다.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동아시아 민중연대의 미래를 노부부 활동가에게서 엿보다

어느새 오자와 부부는 세계의 또 다른 화약고,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과 신냉전 체제에 맞서 방위성(일본의 국방부 격인 기관) 부근에서 오키나와 군사기지 철거를 위한 연대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시 평화헌법 수호집회에 열심인 이들은 세월호 배지를 착용하고 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들의 복장에서 노란 배지는 항상 함께 존재했었다. 오자와 쿠미코 씨는 2000년부터 한국민중가요연구회 ‘노래의 모임’을 꾸려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웬만한 일본 출신 K-POP 아이돌 못지않게 열창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큐멘터리 속에서 근래 국내 방송을 탄 어떤 영상보다 다양한 민중가요를, 그것도 일본풍으로 살짝 수정된 형태로 들을 수 있다. 처음에 울려 퍼지는 건 한창 투쟁이 진행 중이던 사업장 앞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몸짓을 곁들여 풍자하는 ‘나와라 덴소’다.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노동가요 중 하나인 ‘철의 노동자’가 살짝 일본 복고풍 멜로디를 가미해 여러 차례 흘러나온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영악해지는 사용자의 술책에 맞서는 한국 하청노동자의 처지를 대변하듯 ‘민들레처럼’도 들을 수 있다. <응답하라 1988>과 <응답하라 1994> 같은 복고풍 드라마에서 시대 배경을 살려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시위 재연, ‘바위처럼’ 같은 당대 민중가요 소환이 이뤄지곤 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사람 오자와> 연작에 비견될 만한 국내 노동자 투쟁 묘사는 본 적이 없다.

상당히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배경에 국한될 경우라면 뉴스 보도 건 드라마나 예능이건 적당히 희화화된 정도로만 언급되던 노동운동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내내 공개되다니, 대부분의 공간이 일본이라서 허용되는 것일까, 악덕 일본 자본에 맞서는 한국 노동자라는 구도 덕분에 살짝 개방된 틈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국가를 구분하는 게 절대적 의미가 있는 게 맞을까? 오자와 부부가 도입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본주의+제국주의의 극악한 형태가 결합한 동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이미 일국적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스템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건 아닐까 짚어봐야 한다. 이제 황혼이 가까워지는 노 활동가들은 20대 시절부터 개별 국가 내에서의 싸움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국제적 연대를 힘닿는 한 실천하며 저항한 것 아닌가.

그렇게 시야를 확장하는 순간 오자와 부부라는 선량한 일본인 활동가는 어느새 동아시아 민중연대의 기억과 전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신한다. ‘철새기업’ 행태는 자국 내에서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국에서라면 감히 바랄 수 없는 낮은 노동조건을 노리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국 내에선 비교우위인 노동기준과 복지정책을 내세우던 유럽의 기업도 한국, 그리고 3세계에선 이윤 획득에만 혈안이 된 민낯을 드러낸다. 정치와 사회, 미디어가 이를 용인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원정투쟁을 어렵게 단행한 노동자들을 돕는 건 한국정부가 아니라 민족감정에 의존해 도매금으로 매도하기에 십상인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라는 걸 다큐멘터리 내내 확인할 수 있다. 한국 하청노동자들이 본사 정문 앞에서 항의하는 걸 가로막고 촬영을 방해하는 이들은 일본 원청노동자들이다. 이런 구도라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오자와 부부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숙지하고 있던 것이다.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그리고 삶과 투쟁은 계속 이어진다

오자와 부부는 늘그막에도 쉴 틈이 없다. 어렵게 국내에서 개최된 외국인투자촉진법 국회토론회에서 한국의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에선 ‘철새기업’의 행태를 폭로하는 것과 동시에 오자와 부부 같은 연대활동가들의 소중함을 언급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들이 함께했던 한국 노동자들의 근황이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에 반가운 얼굴들이 세월의 흔적으로 풍화된 채 차례로 등장해 회고와 감사를 전한다. 그런 에피소드가 차례로 이어지니 그저 유별난 호인들로만 보였던 이 부부 활동가의 지난 업적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남편 오자와 타카시 씨는 반년 넘게 옥고를 치르고 보석으로 간신히 풀려난 뒤에도 여러 차례 공판에 참석하는 중이다. 엄연히 코로나 상황 때문에 일본으로 넘어올 수 없는 한국 노조를 대리해 연대투쟁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은 눈엣가시로 여기던 오자와 씨를 괴롭히고자 개인의 일탈과 폭력으로 몰아붙이며 1년 실형을 구형한다. 검찰의 공소가 형사재판에서 99.5% 유죄판결을 얻는 일본 사법제도 현황 때문에 긴장이 감돈다. 결국, 최종 공판에서 재수감은 면했지만 적지 않은 벌금형에 처하고 만다. 오자와 부부가 신념과 정의를 지키며 살아온 삶의 대가는 가혹하다.

그들이 가장 최근에 연대했던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내 청산 철회와 복직에 이르진 못했지만 노사 간 ‘위로금과 재취업 고용기금 마련’에 합의한다.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책을 다 구사한 끝에 만족할 순 없지만, 그래도 대오를 유지한 가운데 투쟁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감사 인사가 이 활동가들에겐 거의 유일한 보람이자 긍지일 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해외자본의 일방적 철수로 인한 투쟁들이 호명된다. 한국게이츠, 한국산연, 한국옵티칼… 직장을 잃고 떠나야 했거나 지금도 고공에서 농성하고 단식으로 억울함을 알리는 등 사력을 다하는 ‘철새기업’ 노동자들의 현실이 조명된다.

오자와 부부는 근대 이후 확립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면, 특히 동아시아에서 일본⇒한국⇒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연결되는 수탈과 착취 구조를 직시하고 인생을 바쳐 저항해 왔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진 않아 보이지만, 진정한 사회적 변화와 모순의 철폐를 위해 이들이 지난 시간 내내 고투해 왔던 경험과 통찰을 전수받는 건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 되기에 전혀 부족할 게 없다.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다큐 인사이트_일본사람 오자와” 스틸(by KBS)

※ 덧붙이는 글_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다큐 인사이트> 프로그램을 소개했는데 하필 4월 총선을 앞두고 해당 프로그램이 준비하던 4.16 세월호와 천안함 등 사회적 재난과 관련 PTSD를 다루려던 특집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편성 연기되었다는 해괴한 소식이 들려왔다. 부당한 권력과 자본주의적 탐욕이 장악한 시스템 아래 진지전은 쉴 틈이 없고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작품 정보

 

KBS 다큐 인사이트

174화 일본사람 오자와 1부 (2023.12.21.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JLgj_66OI-k&t=53s

175화 일본사람 오자와 2부 (2023.12.28.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HZEwY0krW2M&t=8s

연출·촬영 이호경 PD

2024 일본 노동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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