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이 지났습니다.

아흐레 지나면 춘분입니다.

24절기를 축약하면 팔절입니다. 전지(全紙)를 세 번 접어 서 여덟 장으로 나누는 것을 팔절(八折)이라고도 하지만, 한 해 이십사절기 중 중요 맥락마다 있는 절기를 팔절(八節)이라고도 합니다.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입니다. 그 팔절 중 두 번째인 춘분을 재촉하는 봄비가 어둠과 함께 보현골에 찾아왔습니다. 꼭 여름 장맛비처럼 말입니다. 저녁 여섯시 반을 넘기면 해가 지고 아침 해는 여섯시 오십분 경에 뜨니. 얼추 낮밤의 장단이 비슷해져 갑니다.

 

ⓒ정헌호
ⓒ정헌호

철을 잊은 봄비가 금년 농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저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산중의 날씨는 영하로 떨어지고 비와 탁한 어둠 속을 헤매는 고라니들의 울음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처연합니다.

보현골과 첫 정을 붙일 무렵 추위와 어둠과 함께 몰려오는 고라니들의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 들고양이 울음 같기도 하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애기들이 젖을 달라고 떼를 쓰는 듯한 울음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도 그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리더니만 칠팔 년이 지나니 덤불 속 찬바람 부는 곳에서 울고 있을 고라니들의 안부가 슬슬 걱정이 됩니다.

 

겨울 동안 앞산에 가리어 별자리 중 드물게 찾을 수 있는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이 북극성 동편으로 보입니다. 그 별이 ‘새끼고라니들의 명운까지 관장을 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이 밤 잘 보내야 될 터인데 말입니다. 지난가을 나와 영역 다툼을 하던 그 새끼 고라니인지도 걱정도 됩니다. 꼴에 나의 영역 표시랍시고 밭 가장자리에 오줌 싸듯 쳐놓은 울타리와 그 밭 안에 심어 놓은 밀과 봄 꽃구경하려고 심어 놓은 유채를 헤집어 놓는다고 두 마리의 새끼 고라니를 우격다짐으로 울타리 밖으로 내 몬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사실은 한 울타리를 쓰는 옆집 과원의 젊은 농부가 심어 놓은 어린 자두 묘목을 고라니들이 별스럽게도 헤집어 놓은 것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시조시인 ‘민병도’ 선생이 우리네 피조물들에게 ‘삶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시가 있었습니다.

들풀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견디는 일이라 했다

 

 

저는 고라니에게 ‘삶’을 물었습니다.

“꾸에엑” “꾸에엑”

쫓기는 일이라 했습니다.

어쩌다 자기네 영역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의 밭에 들렀다가 밀 이삭 하나 맛보질 못하고 넉자 높이 울타리를 도약해 넘어야 하고……

어쩌다 달콤한 복숭아밭에 들렀다가는 일본도 같은 날카로운 전기울타리 충격에 또 산으로 내달려야 하고……

어쩌다 갈증을 달래려 길 건너 개울에라도 내려가려면 번갯불 같은 범의 눈을 가진 ‘제네시스’를 살펴야 몸을 치고 가는 로드킬을 면할 것이고……

어쩌다 편한 잠을 한번 자려 하면 보현산을 넘는 살벌한 칼바람에 혹 진눈깨비라도 날리는 밤이면 덤불 잠자리가 젖고, 날릴까 봐 마음이 쫓기고……

 

심각한 기후 위기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린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온난화 영향으로 지구 곳곳의 어마어마한 숲이 화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사막의 면적이 하루가 다르게 넓어진다고 합니다.

농민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스콜성 비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교목성 과수인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밭 전체를 비닐로 덮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국입니다. 덩굴성 과일인 포도는 비닐로 그들의 하늘로 향한 창을 덮은 지 오래입니다.

 

ⓒ정헌호
ⓒ정헌호

제가 고라니만 걱정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피조물 모두의 삶, 그중에서도 유약한 호모사피엔스의 삶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피조물의 삶은 저기 ‘산’처럼 ‘강’처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뉴스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4차 방류’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고 견뎌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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