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으로 함께 일하기엔 너무 좋고 고마운 존재지만, 막상 임금을 지불하기엔 뭔지 모르게 찝찝하고 아깝다”라는 동료의 속마음을 들어야 했다. 1년을 근무한 단체에서는 임금을 지불할 여유가 도저히 없다며 나의 활동보조시간 일부를 동료에게 명의를 돌려서 가사보조를 얼마만큼 포기하게 하는 대신 나의 임금으로 주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급기야 몸담고 있던 단체의 안 좋은 실상들을 깨닫게 될 때 쯤 난 동료들과 자주 부딪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일터를 떠났다.

- 출처: ‘생산성’ 묻는 사회, 장애여성의 노동은? - 일다 - < https://www.ildaro.com/6188 >

불법으로 규정된 부정수급과 편중된 교육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에게 바우처를 지급하고 그 바우처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에만 사용하도록 용처를 제한하고 있다. 활동지원 서비스 외의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받고 활동지원급여비용을 청구하는 행위 일체는 부정수급으로 판단된다. 활동지원급여비용 청구 주체는 활동지원기관이고, 이 급여비용 중 일부를 활동지원사에게 임금으로 지급한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얼마나 제공되었는지는 사회보장정보원 전산시스템을 통해서 기록된다. 활동지원사는 활동지원기관이 지급한 단말기를 가지고 출근한다. 장애인이용자를 만나면 단말기에 장애인이용자의 카드를 태그하고, 전자바우처시스템을 통해 받은 활동지원인력 자신의 카드를 태그한다. 태그가 있어야 사회보장정보원 전산시스템에 출근과 퇴근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면 서비스를 제공한 시간만큼 장애인이용자의 바우처가 차감된다.

이렇게 기록된 전산 기록을 근거로 급여비용이 청구된다. 급여비용은 활동지원기관이 활동지원사를 보내어 장애인에게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을 전제로 지급되고, 또 그 전제로 활동지원사에게 임금이 지급된다. 전제가 되는 정당한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었다면 지급된 비용은 이자가 가산되어 환수1)되고, 부정한 청구 행위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2) 행정 차원에서 지정취소 혹은 자격정지를 당하거나3) 가담한 장애인수급자는 일정한 기간 활동지원급여가 중단될 수도 있다.4)

법률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는 만큼 부정수급 금지는 강조하고 반복해서 교육된다. 부정수급에 가담할 수 있는 주체는 활동지원기관,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이용자 세 주체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배적 지위에 있는 자들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은 거의 활동지원사에게만 이루어진다. 활동지원기관은 부정수급을 단속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기관 중 한 곳이다. 장애인이용자교육은 대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애인이용자 교육도 활동지원기관이 담당하는데, 활동지원기관 입장에서 장애인이용자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바우처를 지급하는 고객에 해당한다. 장애인이용자를 교육한다는 것은 고객을 교육하는 꼴이다. 기관에서 교육을 소집해도 장애를 이유로 참가하는 사람 수가 적다. 결국, 장애인 고객들에게는 서면이 전달되고 서명만 이루어진다.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부정수급을 주도하는 자는 누구일까

정작 부정수급은 활동지원사의 주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통념은 부정수급이 장애인을 ‘등쳐먹는’ 활동지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상상하는 듯하다. 제대로 서비스는 제공하지도 않고 임금만 받아 가는 활동지원사. 하지만 여기서 가정되는 장애인은 멍청하고 속기만 하고 빼앗기기만 하는 무력한 장애인이다. 오히려 우리는 장애인이 그런 존재이기만 한지 질문해야 한다. 장애인을 무능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장애혐오 시선의 일부다. 장애혐오적 시선은 노동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활동지원사만 교육하고 닦달하는 현재의 제도는 어쩌면 그 인식의 결과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보장정보원에 근무기록을 남기는 방법은 단말기에 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태그를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과 활동지원사의 ‘의사 일치’가 필요하다. 활동지원시간을 장애인들은 생명 같은 시간으로 묘사한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 몰래 카드를 찍는다는 것은 그 생명 같은 시간을 무단으로 탈취하는 행위다. 특히 활동지원 시간을 금액으로 환산하여 표기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장애인이용자들은 바우처 금액을 자신에게 주어진 돈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 몰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근무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누군가가 몰래 돈을 훔쳐 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 정말로 활동지원사 단독으로 기망에 의해 그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 장애인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바우처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문제상황이다. 이런 문제상황은 오히려 활동지원서비스 외에 다른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드물고 장애인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바우처라는 자원을 잘 분배하여 사용한다.

역으로 질문해 보자. 활동지원사가 부정수급을 제안할 수 있을까? 활동지원사가 부정수급을 제안한다면 장애인 이용자는 즉시 활동지원기관에 알릴 수 있다. 장애인이용자는 응하지 않고 바로 활동지원사를 교체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지원사가 부정수급을 최초로 제안한다는 것은 이미 어떤 특별한 관계 속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거절할 수도, 신고할 수도 없지만 책임은 져야 한다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이용자의 부정수급 제안을 거절하기가 힘들다. 이유를 불문하고 서비스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력이 장애인이용자에게 있는 현재 상황에서 부정수급을 거절한다는 것은 실질적 해고에 노출되는 것을 각오하는 행위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이용자의 부정수급 권유를 거절하여 하루아침에 일자리에서 잘리게 됐다.5) 코로나 시기에만 있었던 일일까. 해당 보도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장애인 일자리 감소를 이유로 들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끝난 지금에도 우리나라 전체 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애인 상시근로자 수는 거의 변동이 없다.6) 단지 감염병 유행으로 필수 돌봄노동자로서 활동지원사의 실태가 언론에 조금 주목받았을 뿐이지, 정말로 장애인 일자리 감소를 이유로 볼 수는 없다. 보도의 활동지원사는 4월에 근무를 시작하여 9월에 처음으로 부정수급 제안을 받고 교체되는데, 해당 이용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부정수급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활동지원사는 부정수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신고하기가 힘들다. 부정수급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아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또한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져 활동지원사가 감내해야 할 부담이 크다.

한편 단속에 적발된 부정수급에 대해서는 활동지원사만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입증할 수 없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부정수급은 그 불법성이 강조되는 만큼이나 공모자들도 부정수급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공모자들은 그와 관련된 증거를 없애야만 한다. 부정수급은 장애인과 장애인의 주변 사람에 의해 주도되지만, 부정수급과 관련된 증거는 활동지원사를 향하고 있다.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이용자가 같이 있지 않았다는 증거는 대개 명백하고, 활동지원사에게 임금이 지급된 사실도 명백하다. 하지만 장애인이용자와 주변 사람이 취한 이득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임금은 활동지원사의 계좌를 스쳐 흔적이 남지 않는 현금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장애인을 지배하는 자 바우처를 지배하리니

인용한 본문을 다시 살펴보자. 장애여성은 자신이 기존에 받던 “활동보조시간 일부”를 “동료”에게 명의를 돌려 “임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본문의 장애여성이 일한 곳은 “장애인을 위한 시민단체”이다. 동시에 활동지원사업을 수탁받은 단체이다. 장애여성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아마도 비장애인)동료를 활동지원사로 등록시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제공한 듯 활동지원급여비용을 청구했을 테고, 또 동료의 계좌로 활동지원사 임금 명목의 금전을 지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금전을 현금으로 받아 장애여성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애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취약한 지위가 이중적 착취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임금은 단체가 지급한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이 제공받았어야 할 서비스를 단순히 돈으로 돌려받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장애여성은 노동력까지 제공했다. 바우처 금액도 온전히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동료는 자신의 명의를 공짜로 제공했을까. 동료의 인건비 일부로 지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활동지원기관은 25%까지 징수할 수 있는 중개수수료를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서비스를 제공하던 활동지원사는 어떻게 됐을까? 서비스 중단을 통보받고 실질적 해고 상태에 돌입하거나,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면 일거리가 줄어 임금이 줄었을 것이다. 장애인이용자의 서비스중단 요구권이 절대적인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장애인이용자의 취약성은 활동지원사의 취약성으로 연결된다.

이후에 부정수급이 발각된다면 장애여성은 자신이 지급받은 ‘임금’을 반환할까? 삼자 간의 관계가 어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증거는 활동지원사 명의를 달아둔 ‘동료’를 향해있다.

 

부정수급이 불가능한 제도가 힘들다면 신고라도 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부정수급과 관련한 신문기사는 주기적으로 나온다. 정부는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속강화만을 말한다. 하지만 단속만으로 부정수급이 근절될까. 우리는 부정수급을 금지하는 제도가 아니라 부정수급이 불가능한 제도를 구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의 서비스 시간과 활동지원사의 임금이 연계된 현재의 체계로는 부정수급 가능성이 언제나 잔존한다. 부정수급을 할 이유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제도로 변화해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와 장애인이 받아야 할 활동지원의 권리가 분리되어 각각 보장되는 방식으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끔 부정수급과 관련한 문의가 온다. 처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뭔가가 이상하다며 문의하는 활동지원사도 있고, 다른 사람이 부정수급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활동지원사도 있다. 미처 모르고 부정수급에 동참한 노동자 대다수의 경우는 장애인이용자나 활동지원기관, 주변 사람들이 부정수급을 주도한 사실에 관한 증거는 없다. 부정수급 관련 상담을 할 때 더 이상 신고하라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정말로 신고했다가 크게 고생하는 활동지원사를 봤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는 정직하게 신고했지만, 임금을 환수당하고 벌금을 내고 자격을 정지당했다. 반면 장애인이용자는 수급권이 잠시 정지되었을 뿐이다. 활동지원사가 부정수급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는 없다. 일을 그만두는 이유를 밝히기도 힘들다. 자발적 퇴사로 인한 불이익은 노동자 부담이다.

다른 활동지원사가 이용자와 부정수급을 하는 것을 알게 된 활동지원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 노동자는 클린센터에 신고하자 신고를 취소하라는 활동지원기관의 전화를 받았다. 신고자를 보호한다는 클린센터를 믿지 마시라. 그저 모른 척 일하면서, 조용히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게 최선이다.

부정수급이 불가능한 제도로의 혁신이 안 된다면, 활동지원사가 부당한 일을 보면 신고라도 할 수 있는 노동조건은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부정수급 프로세스의 핵심은 부정수급에 대한 주도권이 장애인과 장애인을 지배하는 자에게 있음에도 증거는 활동지원사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부정수급을 끊어낼 수도 없고, 이를 통해 피해를 보는 활동지원사가 현장을 이탈하는 일만 늘어날 것이다.

 

글 _ 전덕규

2011년부터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하고 있다. 적게 일하고 조금 벌고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의 노동조합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https://litt.ly/ndaukr)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1)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35조(부당지급급여의 징수)

2) 동법 제47조(벌칙) 제1항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 동법 제24조(활동지원기관 지정의 취소 등), 제30조(활동지원인력의 자격 취소 및 자격 정지 등)

4) 동법 제19조(활동지원급여의 중단 또는 제한) 제1항 “1년의 범위에서 활동지원급여의 수령이나 제공 기간 등을 제한하여야 한다.”

5) 황 씨는 한 시각 장애인을 주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장애인이 황 씨에게 ‘거래’를 제안한 겁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자신을 돌봐주지 않아도 되고, 다른 요일에도 오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등 편의를 봐줄 테니 6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황 씨는 “60만 원을 주고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돌봄 대상자에게) 얘기했더니 하루아침에 (일자리에서)잘리게 됐다”고 합니다. _ KBS뉴스, 2020년 12월 8일자 보도, “우리도 돌봄이 필요해요”…장애인 돌보는 ‘돌봄 노동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065927)

6)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매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를 발표한다. 2018년부터 2023년 우리나라 전체 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애인 상시근로자 수를 살펴보면 22만 명 언저리에서 큰 변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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