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의 참사를 연결하는 사회적 연대의 고리를 찾아서

 

 

“세월”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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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9년 차의 단상

또다시 4월 16일이 지나갔다. 2014년, 사고 발생일로부터 벌써 9년이 흐른 2023년이다. 심지어 내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워낙에 깜짝 놀랄 일이 펑펑 터지는 한국사회에서 세월호는 마치 암석이 풍화되는 것처럼 조금씩 잊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아쉬워도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와 망각이라기엔 뒷맛이 개운할 수 없는 상황인 게 문제다. 세월호 참사 발생 초반부터 정략적 의도에 의해 왜곡되고 흑색선전으로 갈라 치기를 당한 세간의 시각과 평가는 여전히 분절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관련 소재를 다룬 4월에 개봉한 모 작품 관련 반응도 영화를 만들고 소개하느라 수고한 이들의 기대에 턱없이 모자란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 “그래도 설마?” 할 이들이 제법 있겠지만 실제로 해당 작품은 거짓말처럼 저조한 관객 수를 기록 중이다. 이미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세간의 주목은 다 식어버린 느낌이다. 그저 4월 16일 단 하루, 당일 전후에만 관행적인 취재 보도가 이뤄졌을 뿐이다. 해당 작품 개봉에 맞춰 다른 매체에 소개 글을 작성했지만 역시 기대했던 반향은 없었다. 오직 작품 내용에는 관심 없이 특정 소재를 다룬다는 데에 주목한 악성 댓글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차라리 화끈하게 논란이라도 벌어졌더라면 좋았으련만 필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지나가다 던진 돌에 맞는 수준에 불과한 파장이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애초부터 재수 없는 사고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억지를 단 한 번도 철회하지 않았고 그런 궤변은 9주년에도 변함이 없었다. 원래 그런 부류들이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인두겁을 쓰고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던 무리들 아닌가. 오히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에 더 집중해야 했을 여력을 에어포켓이니 잠수함이니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열을 올리다 급기야 주술과 무속까지 치달았던 이들의 현재가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비분강개하던 소영웅주의의 불꽃도 시들해진 지 오래다. 물론 사고 발생 초반에 시민들의 여론을 환기하는 데 일정 부분을 담당한 때도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정작 필요한 데 쓰일 에너지를 허투루 소모한 측면은 훗날 평가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떠날 이들은 대충 전부 떠난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신용이 더 가게 마련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힘 있는 자들이 켕기는 게 많았는지 그저 외면하고 무시했기에 유가족과 헌신적인 연대 단위들은 누구라도 억울한 사연 좀 들어주길 바라면서 어디든 부르면 기꺼이 달려가는 시간을 축적해 왔다. 어느새 이들은 자신의 애끓는 목소리를 경청해 주는 이들과 자신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생업에 전념하던 평범한 이들은 단장의 비극을 겪은 희생자가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섬뜩한 진실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세월”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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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아주 특별한’ 연대의 기록

어처구니없는 재난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다. 왜 이리도 사회적 재난은 근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지 영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극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즉 사회적 참사를 교훈 삼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늘 적당히 대충 봉합하고 넘어가기만 해온 관행은 어느 순간부터 고대의 희생제의 마냥 인신 공양을 일삼으며 도돌이표를 거듭한다. 실로 끔찍한 참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하지만 그런 경악스러운 체험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뛰어넘어 진실에 도달한 소수의 사람은 깊이 있는 통찰과 드넓은 연대의식을 승화시켜내기에 이른다.

장민경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세월>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아낸 기록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슬픔을 또 다른 동력으로 전환해가는 진화의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한국사회에 교훈과 희망을 던지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입증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전해지는 작업이다. 전혀 만만치 않은 과제이지만 이 영화를 작업한 감독은 이미 경험치가 일정 부분 축적된 상태다. 데뷔작부터 꾸준히 대학교 청소노동자와의 연대(2014년 단편 <안녕들하십니까>), 차별금지법 제정 연대(2021년 단편 <평등길1110>), (2022년 옴니버스 ‘봄바람 프로젝트’ 중 단편 <From.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등을 작업하며 꾸준히 한국사회 사각지대를 조명해 왔을뿐더러,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난한 세월을 다각도로 조명한 장편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에도 참여한 바 있으니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CBS 라디오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기록 작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16 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집행위원장, 세간에서는 ‘예은 아빠’로 알려진 그가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면서 차례로 게스트를 스튜디오에 초청한다. 그들은 우리의 기억 한구석에서 세월의 풍화에 따라 잊혀가던 다른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무딜 대로 무뎌진 사회적 참사에 관한 경각심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육친의 희생을 겪어가며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이들이 차례로 자리를 채운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의 유가족이 차례로 만나는 이들의 명단은 묵직하고 세심한 라인업을 구성한다. 2003년 대구지하철 중앙로 역 방화 참사로 딸 故 한상임 님을 잃고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을 이어가는 어머니 황명애 님이 첫 번째 주자다. 다음으로는 1999년 서해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로 故 고가현-고나현 7살 난 쌍둥이 딸을 잃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해 활동 중인 고석 대표.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님이 다음 순번을 차지한다. 그들과 만남을 통해 진행자인 유경근은 상호 간의 위로와 연민을 넘어 한국사회에 대한 어떤 통찰에 접근해나간다.

 

"세월"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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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연대기를 재구성하고 분노의 대상을 소환하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사회적 참사의 연대기를 한국현대사를 통해 재구성하려 시도한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의 특정한 패턴과 문제 해결이 요원한 한계를 추출하려 노력한다. 그런 제작진의 의지와 기획을 반영해 영화의 전개 구조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를 취한다(2014년⇒2003년⇒1999년⇒1987년). 이런 역주행을 통해 영화는 단순한 재난의 기록 차원으로 진행된 유사 작업과 차별화된 내용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상당히 야심 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4개의 사회적 죽음은 30여 년의 시차를 가볍게 뛰어넘어 나란히 놓인다. 어떤 이에겐 단지 우연한 개별의 사고일 뿐이겠지만 영화 속에서 유가족이 몇 차례 돌아가며 풀어내는 쟁점들은 무서울 만큼 닮은꼴을 취하고 있었다. 각각의 사건들은 그저 발생한 시공간이 차이가 날 뿐, 분단 이후 ‘잘살아보세!’를 주문처럼 외쳐가며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을 위해 일방통행하는 가운데 포기해버린 것을 고스란히 표상하고 있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맹목적 폭주에서 그저 사소한 것으로, 혹은 어쩔 도리가 없는 ‘부수적’ 피해에 불과한 일회성 재난들이 실제로는 거대한 하나의 뿌리에서 돋아난 어둠의 줄기라는 결론에 출연자들은 합의를 이룬다. 그 동질성이 너무나 명명백백해서 놀라울 정도다. 왜 이걸 여태 몰랐을까? 싶다.

차례로 새로운 출연자들과 함께 소환되는 사회적 참사의 흔적들은 한때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렸지만 결국 일회성 관심과 분노에 그쳤던 쓰라린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는 억울한 희생 앞에서 찰나에 분노했지만, 그 분노는 제대로 집약되지도, 비등점에 제대로 도달하지도 못한 채, 금방 ‘경제’를 살려야지? 같은 허구적 대항마에 힘을 잃어버리곤 했다. 정오의 햇볕을 볼록렌즈로 한데 모아 불씨를 점화하지 못한 채 난반사에 그치고만 셈이다. 그런 아쉬움과 회한까지 영화는 헤아려내고자 한다.

고통받아온 이들만이 가능한 상호이해와 연대의식 형성이 주된 전개 동력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차가운 분노로 소환하기도 한다. 사회적 재난에 희생당한 이들과 유가족의 비통한 사연을 고작 물질적 보상 더 받아내려 하거나 ‘시체 팔이’라며 매도하던 이들이 다시금 등장한다. 개인적인 슬픔을 딛고 떠난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데도 그 애끓는 사연을 타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진보를 위해 승화시키려 다짐하고 실천하던 이들에게 자행된 온갖 무례와 모욕의 부끄러운 민낯이 재조명된다. 광화문 ‘폭식투쟁’이라는 괴기스러운 풍경은 다시 봐도 아찔하고 어처구니없다. 지금 그들은 과연 반성하고 있을까?

 

“세월”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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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난의 연대기를 거슬러 도달한 결론은

여기에서 이야기는 더 심층적으로 나아간다. 화면에 가득 등장한 인외마경(人外魔境)을 넘어 시기마다 사회적 참사에 책임져야 할 자들이 과연 온당한 처분을 받았는지 실상을 공개한다. 물론 익히 짐작이 가듯 제대로 단죄되었을 리 없다. 억울한 희생을 방치하고 조장하며 일그러진 물질적 성장의 정점에 있던 존재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진상을 덮고 빠져나가려 발악했고, 대체로 성공했다. 실로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한 메스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것을 막고자 필사적이었다. 2014년, 2003년, 1999년 모두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화면을 통해 확인하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분노와 원한만으로는 견딜 수 없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피눈물로 깨달은 교훈을 주변에 전파하는데 애썼고, 동병상련의 타인을 찾아 나선다. 슬픔을 나누는 새로운 가족이자 연대하는 시민으로 그 과정에서 재탄생하는 셈이다. 물론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기 그지없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희생자 추모사업은 지역이기주의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10여 년 넘게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태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온갖 정치적 악의로 가득한 유언비어에 시달린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동참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이들이 소수이나마 꾸준히 탄생하고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사회에는 ‘7명의 의인’ 혹은 ‘칼레의 시민’이 존재하는 셈이다.

처음엔 다소 이질감이 들 수 있는 등장인물인,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 배은심 님(영화가 완성된 후 2022년 별세)의 등장은 어떻게 한국현대사가 슬픔에 대한 공감과 추모의 기운을 동력으로 삼아 전진해왔는지를 환기해 주는 이정표 역할을 담당한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배은심 님이 자식을 먼저 보낸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유가협 활동이 실은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활동과 ‘통’한다는 게 차츰 수긍이 간다. 그렇게 확장된 인식의 지평은 마침내 세월호 유가족이 1980년 5월 광주의 유가족, 그리고 1970년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님, 그리고 후예들과 만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우리가 금방 잊어버리곤 했던, 하지만 기억하고 개선해야 마땅한 주변의 숱한 재난과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이 서로 접속되기에 이른다.

물론 다소 반복적인 흐름의 순환이나, 극적 긴장감 대신 차분한 기조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호흡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세월>은 4.16은 물론 같은 궤에서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할 한국적 현실의 ‘사회적 재난’이라는 단면도를 재구성하려는 전환점을 제시하는 의의가 돋보인다. 어느덧 내년이면 세월호 사고가 10주년이다. 단발성 분노와 열광이 거품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 이 기록영화는 견고하게 지속하여야 할 미래의 과제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가치가 충분하다.

 


작품 정보

 

세월 Life Goes On

2021, 한국, 다큐멘터리, 98분

감독 장민경

출연 유경근, 황명애, 고석, 배은심

PD 주현숙

구성 장민경, 이은지

촬영 장민경, 오지수

조연출 황혜진, 김서윤

음악 흐른

편집 장민경

2021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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